중국 10대 명산 무이산(武夷山)을 다녀오다.
중국 10대 명산 무이산에 내 발자욱과 흔적을 남겨 본다.
중국생활 20년이 넘도록 복건성쪽은 한번도 가보지를 못했는데 이번 여행에 소원을 푼것이다.
그중에서도 무이산은 중국 10대명산이라 일컬어지는 산이라 더욱 더 뜻깊다.할수가 있겠다.
무이산(武夷山)은 복건성(福建省)에 위치하여, 중국 동남쪽에서 경치가 으뜸이라 꼽혀온 명산이다.
기이함과 수려함으로 이름난 무이산은 물이 옥같이 맑고 산봉이 비취같이 푸르고 기이한 암석과 동굴들이 많으며
태산의 웅위로움과 화산의 험준함, 황산의 기이함, 계림의 수려함을 모두 담고 있다.
무이산시에서 입장표를 구입을 하였는데 200원만 주면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면서 자기차로 이동을 해준다고 한다.
가격이 싸서 혹시나 했는데 가이드는 친절하게 여러곳을 안내해주었다.
첫번째 장소는 폭포가 멋드러진 청룡대폭포 라는 곳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누드의 금발머리가 간판에 떡 하니 디자인 되어 있는것 아닌가? ㅋㅋ
중국은 진짜 알다가도 모를곳이다. ㅎㅎ
평범해보이는 하천을 올라가고...,
에고 이정도는 중국 어디가도 흔히 볼수 경관이 아닌가?
한참을 올라가니 청룡대폭포 라고 써있는 나무 간판이 보인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지?
계곡을 한참 올라가니 마치 한반도 지형같은 곳이 나오기 시작을 하였다.
무이산에는 36개의 봉우리와 99개의 암석, 2개의 병풍절벽, 8개의 고개, 3개의 바위암봉이 있고,
계곡도 많아 4개의 계곡, 9개의 여울, 5개의 웅덩이, 11개의 골짜기, 13개의 샘이 있다
.이 지역에는 약 4천년 전에 월족(越族)이 살아 가학선관(架壑船棺)의 전설을 남기고 있고,
한대에는 명산으로 봉해져서 유(儒) 불(佛) 도(道) 삼교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있다.
울창한 숲을 지나가니, 내가 사는 칭다오에는 초겨울이 시작되고 있는데 이곳은 한여름이나 마찬가지 였다.
이곳 사람들은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東周出孔丘 南宋有朱熹 中國古文化 泰山與武夷)란 말로 무이산을 칭송한다.
어쩌면 이리도 물이 맑을까?
중국은 천연자원도 많고 석유도 많이 나오는곳인데 심산계곡에는 이처럼 맑은 물도 흘러내린다.
아무튼 땅덩어리는 크고 봐야 된다.
폭포는 끊임없이 구비구비 계곡을 흠뻑 젹셔 내려 온다.
폭포수 밑에서 웃통을 벗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온몸에 느껴보고 싶어진다.
나무 다리가 아니고 세멘트로 만들어진 다리임 ^^
어디에서 이토록 많은 물이 모아져서 쏟아지고 있는것일까?
바위의 움푹 패져 있는 모양새가 커다란 둔부 같다.
한국같으면 계단 작업할때 요렇게 조그마한 나무는 잘라 버렸을텐데
중국이오히려 자연보호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사랑의 열쇠를 함 매달어 볼수 있을까?
무이산 산해을 마치고 무이산 시내로 다시돌아왔다.
아래 사진은 가이드가 자기집에가서 차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의심을 품었는데 역시나 차를 판매하는곳이었다.
차는 사지 않고 맛있는 차만 얻어마시고 난 다음에 다른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다.
주나라의 공자가 태산에서 유학을 창시하였듯이, 남송때 주자는 무이산에서 신유학인 주자학을 성립하였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무이산은 신유학 즉 성리학과 관련된다.
무이산은 주자가 무이정사(武夷精舍)에 은거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였기에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무이정사에서 서원의 모범을 찾았고, 주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읊으면서 주자를 흠모했다.
그러기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해주 석담에 은거하며 무이산 은병봉(隱屛峯)에서 이름을 따와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지었으며 무이구곡가를 본따서 고산구곡가(孤山九曲歌)를 지어 우리 산천을 노래했다.
그 후에도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은 화양계곡에 은거하며 화양구곡(華陽九曲)이라 이름하였다.
이토록 명산이건만 관광시즌이 아니라서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가 않었다.
이토록 멋진산을 유유자적하며 감상할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