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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 Club Med

Posted by 아창 중국여행/해남성海南省 : 2016. 6. 30. 17:54

2016년도 첫번째 여행을 해남도 클럽메드 라는곳으로 갔다.

처음으로 귀족여행을 한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여행은 오지탐방 배낭여행식이었는데, 처음으로 트렁크 여행을 해본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리무진 버스가 대기하여 호텔로 직행하여 리조트 안에서 먹고 자고 마시고 그 안에서 모든것을 해결하는것이다.

 

해남도는 십여년전에 샅샅이 돌아다녀서 그닥 바깥 출입은 하고 싶지 않었지만 멀리 해남도까정 뱅기를 타고 가서 리조트 안에서만

4박5일 먹고 자고 한것이다.클럽메드라는곳은 난생처음 들어본 곳이기도 하고 처음 가본곳이기도 하다.

 

클럽메드(Club Med)는 프랑스 파리(Paris)에 본사를 둔 프랑스의 글로벌 리조트 기업으로 1950년 제라드 블리츠(Gérard Blitz)가 설립했다.

제라드 블리치는 휴가 모임을 의미하는 클럽(Club)에 지중해를 뜻하는 프랑스어 ‘Méditerranée’의 약자인 메드(Med)를 더해

 브랜드 명을 클럽메드라고 지었다.

 숙박, 식사,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All Inclusive Service)’개념을

 세계 최초로 고안해낸 클럽메드는 세계 각지에 리조트를 건설하며 세계적인 리조트 브랜드로 성장했다.

 현재 클럽메드는 아시아 및 태평양, 유럽과 아프리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5개 대륙에 걸쳐 80여 개의 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다.

 

클럽메드를 설립한 제라드 블리츠는 1912년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 올림픽 프랑스 국가대표 수구 선수였던 모리스 블리츠(Maurice Blitz)의 아들로,

그 역시 프랑스의 국가대표 수구 선수로 활동했다.

제라드 블리츠는 1936년 독일 나치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며 레지스탕스(Resistance)의 일원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가 한창이었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전쟁의 포성은 멎었지만 휴식, 여행, 행복 같은 단어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던

 1949년 제라드 블리츠는 코르시카(Corsica) 섬에 위치한 올림픽 클럽의 텐트 빌리지에 머물고 있던 중

리조트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그 다음 해 바로 실천에 옮겼다.

전쟁에 지친 전후 유럽에 국경과 계급을 뛰어넘어 휴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하고 싶었던

 38세의 제라드 블리츠는 클럽 메디테리니(Club Méditerranée) 라는 연합회를 만들어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자’와 같은 새로운 휴가 개념을 탄생시켰다.

제라드 블리츠는 후에 동업자가 되는 길버트 트리가노(Gilbert Trigano)로부터 200개의 군용 텐트를 빌렸고

 사업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단체들을 직접 찾아가서 20여 개의 단체로부터 스포츠 강습과 액티비티를 지원 받았다.

그 해 여름, 그는 스페인의 마조르카(Majorca) 섬 알쿠디아(Alcúdia) 해변에 최초의 클럽메드 빌리지를 열었다.

빌리지 오픈 첫 날, 300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300프랑의 회비를 내고 해변의 텐트 촌에 머물며 다양한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즐겼다.

 여름 휴가 동안 이 빌리지를 찾아온 손님은 2,300명이 넘었고, 빌리지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왔다가

수용 공간이 부족해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만 10,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텐트나 밀짚으로 지은 방갈로(Bungalow), 공동으로 쓰는 샤워실 등 최초의 빌리지 시설은 단순하고 열악했지만

 한 장소에서 자연과 스포츠를 통해 휴식을 취하는 클럽메드의 휴가 개념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클럽의 목적은 지구촌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울리고 여행하며 서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라드 블리츠의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적인 생각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그가 세운 휴가지로 찾아오려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제라르 블리츠는 자신의 빌리지를 좀 더 체계화시키기로 결심한 뒤, 지중해를 뜻하는 프랑스어 ‘메디테리니(Méditerranée)’를 축약해 빌리지의 이름을 클럽메드(Club Med)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클럽메드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클럽메드 [CLUB MED] (세계 브랜드 백과, 인터브랜드)

 

 

클럽메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모든 것을 누릴 자유’라는 슬로건 하 여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브랜드다.

 클럽메드는 기존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가이드의 안내로 이루어지던 획일적인 여행 패턴에서 과감히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원하던 고객들의 요구에 부합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클럽메드 설립 이전까지 대부분의 여행사들의 성공 전략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가격만 저렴하고 서비스의 품질이 낮은 여행 상품에 불만을 가지는 고객들의 프리미엄 여행에 대한 수요에 클럽메드는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를 제공하며 적절히 대응했다.

해남도의 클럽메드는 최근에 개장한것으로 알고 있다.

계림의 클럽메드가 중국 최초의 클럽메드로 알고 있다.

빌리지 내에서의 규칙은 정해져 있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자신이 선택한 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클럽메드의 커다란 장점 중 하나다.

 클럽메드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된다.

 반대로 각종 스포츠와 액티비티, 관광 등의 다채로운 활동에 참여하며 모든 것을 누릴 자유도 있다.

 

 

일반 호텔과는 달리 아침,점심,저녁을 초호화부페로 식단을 꾸민다.

또한 각종레포츠 활동중 모든음료와 기본주류는 무료로 제공이 된다.

 

요기서 럭셔리하게 식사를 했지롱~~~^^

 

 

 

이름모를 열대나무와 풀들로 이루어진 클럽메드

 

요놈은 대만에서도 본것같다. 일명 가시 나무 ㅋㅋ(내가 지엇다.)

 

 

 

 

 

클럽메드에서는 리조트에 상주하는 직원을 G.O(Gentle Organizer의 약자)라 부르고,

 고객을 G.M(Gentle Member)이라 부른다. 리조트는 빌리지(Village)라 불리며, 각 빌리지의 매니저는 촌장(Chief of Village)이라고 한다.

 오직 클럽메드에만 존재하는 G.O들은 빌리지 내에 거주하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G.M들과 함께 하며 식사와 스포츠 경기 등을 즐긴다.

이는 클럽메드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기도 하다.

G.O는 빌리지 내에서 고객의 휴양 프로그램을 1대 1로 상담해주는 현지 직원으로

낮에는 해양, 육상 스포츠, 관광, 기념품 판매, 리셉션, 바와 식당, 미니 클럽 등 각자의 전문적인 포지션에서 근무하지만

 밤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 오르는 엔터테이너로 변신하여 코믹 쇼와 댄스 공연을 선보인다.

무한정 리필되는 칵테일 ..., 물론 당연히 공짜이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사람이 해남도 클럽메드의 촌장이다.

미니 클럽은 만 4세부터 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키즈 서비스로 다양한 스포츠,

 각종 게임과 파티, 간식 시간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G.O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 특히 저녁에 열리는 이브닝 쇼에는 미니 클럽의 아이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미니 클럽 쇼가 펼쳐진다.

 

 

 

 

클럽메드 설립 이후 지난 60년간,

클럽메드는 변화하는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광고 캠페인을 해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는 단 한 가지였다. 클럽메드가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얘기해 온 키워드인 ‘행복’이었다.

 

꿈같은 4박5일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청도로 돌아오는 시간이 못내 아쉬워서 6월초에 다시 한번 계림클럽메드를 방문을 하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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