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은것이 소화가 안되어 속이 더부룩 하였다. 시간은 저녁 7시가 조금 못되었다.
카메라 가방을들고 삼각대를 마치 81mm 똥포 처럼 어깨에 둘러 메고 팔달산으로 향했다.
며칠전에도 똑같이 소화가 안되어 츄리닝 차림으로 야간에 팔달산에 올라갔는디
산정상에 올라가니 수원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다음에는 카메라를 꼭 가져가야 겠다고 생각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된것이다.
그런데
씸풀 ㅠ.ㅠ 하루종일 비가 온탓인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것이 아닌가?
어쩌겠는가? 기왕나온김에 안개 자욱한 도시를 촬영하는것도 꽤 멋스럽겠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한계단 한계단 팔달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정확히 600여 계단...,
장비 탓인지 숨이차고 다리가 후들후들(정확히 이야기 하면 장비 탓이 아니다. 게으른 탓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어서 그럼)
예전에 중국 황산에 배낭을 짊어지고 황산의 수 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간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정말 죽는줄 알었다.날은 점점 어두워 지고 기온은 떨어지고거기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길까지 잃어서 무서바 죽는줄 알었다. ^___^ 아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만 계단을 올라갔다.내려갔다 한것같음..,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까지 올라가니 비까지 온탓에 공기가 사뭇 넘 싱그러워서 청정지대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개가 살짝낀 야릇한 분위기의 풍경들, 넘 좋은것 같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 간다. 도심의 야경사진은 보이지가 않어서 결국 포기 ㅠ.ㅠ
서장대(화성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곳이 있다
.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 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것이다. 1794년(정조18)8월11일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 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서노대:노대란 누각이 없이 전돌을 쌓아 높은 대를 만든 시설물로 적의 공격을 항상 감시해서 대와 성 전체에 오방색 기로 신호를 하며 적이 근접했을 때 쇠뇌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진지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등 2개의 노대가 있는데 서노대는 서장대 옆에 특이한 형태로 8각형의 평면에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약 3m의 높이로 여장을 쌓아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오르면 성밖의 서쪽이 한눈에 들어오며 적으로부터 군사 지휘소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화서문(華西門)은 보물 제403호로, 수원성의 서문이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虹霓門)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
문의 앞부분에는 반달형으로 된 전축(塼築) 옹성(甕城)이 있는데 높이는 안쪽이 2.62m, 바깥쪽이 3.65m, 두께는 3.25m이다.
이 옹성은 한 평이 트여 있어 문을 출입할 때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1975년 수원성을 중수 공사할 때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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