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된 대만의 첫번째 아침을 맞는날이다. 창문을 열어보니 깨끗한 대만의 거리가 보였다.

오늘의 첫번째 방문지는 사람관저공원이다. 여기는 타이완의 첫번째 총통인 장제스의 옛거처이다.

 

장제스 : 한국어로 장개석이라고 읽는다, 중화민국 내에서는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라고 불릴 정도로 타이완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그래서 중정기념당은 장제스를 위한 기념당이다. 장제스는1911년 신해혁명에도 참가하였으며 쑨원의 신임을 받았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공합작을 했으며 승전 이후 국공내전에 중국 공산당에 패하여 타이완으로 쫓겨와 현재 타이완의 기반을 만든 장본인이다.

 장제스는 쑨원의 정통 후계자임을 내세웠고, 쑨원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방침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장제스는 김구선생에게 한화 20억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타이완을 만든사람은 장제스가 분명하지만, 그는 초창기 타이완에 건너갔을때 현지에 살고 있던 대만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대륙에서 국민당 집권시절에는 타락과 부패를 일삼았던 정부의 주체이기도 하다.국공합작을 하면서도 일제와 대항하기는 커녕 공산당 없에기에 더 주력했던 사람이다.

중국역사에 지대한 획을 그은 사람은 분명하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장제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호텔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눈부시게 깨끗한 거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마치 한국의수원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니 도요(가이드)가 오늘의 일정과 타이완에 대해서 어쩌구 저쩌구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약간 쉰목소리의 도요와 7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곳의 날씨는 태양빛이 넘 뜨거워서 산보를 하더라도 이렇게 양산을 들고 다녀야 된다.

 드뎌 사림관저에 도착을 하였다. 옛관저라기 보다는 빽빽한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큰나무에 기생하는 또다른 식물들을 많이 관찰되어진다.

 이건 무슨 꽃일까? (정답: 남방식물 ! ㅋㅋㅋ)

 나무보다 나무기둥에 기생하여 사는 또다른 식물이 더 멋있어 보인다.

 깔끔하게 정돈된 관저....,

이곳이 아열대 기후라는게 실감나게 만드는 열대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좌측에 빨간 기둥에 기와가 있는곳이 장제스가 아침에 각료들하고 회의를 하던곳이라 한다.

 

어렸을적 공원에서 입에물고 빨었던 수도꼭지 같다. ^^

 장제스의 부인이었던 송미령이 생전에 타고 다녔다는 승용차이다.

 

송미령의 아버지 송가수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첫째 딸 송애령은 국민당의 재무부장을 지낸 재력가 공상희와 결혼했고, 송경령은 둘째 딸로서 1914년 손중산과 결혼했다.

 송가수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손중산과의 결혼을 반대해, 송경령을 가두기까지 했으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셋째 딸 송미령은 그 시대 또 다른 영웅인 장개석의 부인이 되었다.

 

내가 현재 타고 다니는 루젠SUV차이다.  대만 현지에서 만나 보니 엄첨 반가워서 찰칵 ^^

중국에서 타고 다니는 차가 현지에는 자주 볼수가 있었다.(왜냐하면 대만산이니까 ㅋㅋ)

내차가 훨씬 더 이쁜것 같다. ㅎㅎㅎ

 이차는 검은색 루젠차(내차는 흰색이다. ^^)

가시는 일반적으로 줄기나 잎에 많이 나있는데 이나무는 뿌리 위 부터 바로 나있어 사람이 올라가기 힘들것 같다.

중국의 국부라고 불리우는 손중산 선생의 청동상

 

손중산 선생에게는 여러 가지 호칭이 있다. 쑨원(孙文)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고, 손일선은 1883년 홍콩에서 미션학교를 다닐 때 받은 별호이다.

 그는 서구인들과 잦은 교류를 하면서 손일선의 광둥어 발음인 ‘Sun Yat-sen’을 사용했다. 손일신(孙日新)은 미국 회중파 교회 하거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후 받은 세례명이다.

 손중산이라는 이름은 정치가로서 혁명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일본 망명 시절 신분 노출이 되지 않기 위해 우연히 숙박업소에서 이름을 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쑨원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지만, 중국어권 전체로 보면 가장 흔하게 부르는 이름이 손중산이다.

 기독교도보다는 정치가로서 더 알려졌기 때문에, 세례명 손일신보다 손중산이 널리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