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성 경박호를 구경하고서는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로 들어왔다. 백두산을 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용정에 들려서 윤동주시인이 다녔던 학교와 일송정등 일제시대 격변기의 문물들을 구경함이다.
그런데 사실 연변도 아마 5번도 더 갔다왔으리라,가장 최근에 다녀온 시기가 아마2009년도 였을것이다.
그때도 백두산을 갔다오기 위해서 연변에 갔었다. 그리고 똑같이 용정에 들려서 같은 코스를 돌았었다.
이번에 가니 연길시가 많이도 바뀌었다. 서시장도 장소를 옮기었고
완전히 한국 뺨치게 간판과 인테리어가 한국을 따라하여
그모습이 한국의 신도시를 방불케 하는것이 아닌가?
연길에서는 2박을 하고 백두산으로 떠났었다.
늦은밤 연길시에 도착을 하여 일박을 하고 아침에 일찍 용정시로 출발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용정은 우리의 선조들이 가장먼저 마을을 이루고 지금의 도시로 만든것이다.
그래서 "선구자" 라는 노래 가사에 일송정 푸른솔이~, 하는 가사가 나오는곳이 바로 용정인것이다.
여기가 바로 일송정이라는 곳이다.
20년전에 찾아갔을때에는 정말 초라한곳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관광지가 된것이다.
일송정이 있는 비암산 정상에서 용정시 쪽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일송정 올라가는곳이 비암산이라는곳인데 이날이 무슨 장날인가 할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 들었다.
이 많은 조경과 관광지를 조성해놓고 입장료가 공짜였다.
중국의 비싼 입장료만 내고 다니다가 공짜로 이런곳을 다니니 여기가 중국같지 않은 느낌을 받었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사는 조선족 자치구가 좋은것이여 ㅎㅎ
여기가 바로 용두레 우물가인데 우물의 수원지는 통나무로 덮어 놓았고
그위에 한남자가 의자삼아 앉아있다. 이남자는 이우물가가 우리민족의 생명수 였음을 알고나 있을까?
거기에 더 장관인것은 이동네 노인양반들의 휴식터가 용두레 우물이었다.
휴식터는 말이 휴식터이지 삼삼오오 둘러 앉어서 화투들을 치고 계셨다. ㅋㅋ
고스톱들을 치고 계시는걸까? 아님 민화투를 치고 계시는걸까? ㅎㅎ
용두레 우물을 바치고 있는 대리석 기둥에는 각종 한글 낙서가 즐비하다.
별의 시인 윤동주시인의 모교 대성중학교에 왔다.
서시(序詩)
윤동주(尹東柱)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보여준다라는 표현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과 마주 앉은
어느 외로운 밤에 이 시의 언어를 말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의 두 행에서 윤동주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 봄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자신 역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입니다.
하지만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요.
더욱이 삶 자체가 치욕으로 여겨질 수 있는 식민지 상황 아래서 그것은 가능할 수 있었을까?
윤동주 시인은 이에 대해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로 답합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괴로운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 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 부끄러움이란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동주의 서시가 보다 높은 가치를 이루는 것은 다음의 넉 줄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밤 하늘의 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담담한 결의는,
자칫 무모한 번민에 그칠 수도 있는 양심의 자각을 성숙한 삶의 의지로 거두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극히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의 태도를 느끼게 합니다.
화려한 도시의 뒷골목에는 항상 어두운곳이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화려한 조명이 깔려있는 도시와는 대조적으로 위사진은 붉은 벽돌로 지은 한참 오래된 건물인것 같다.
한글간판이 일색인 이곳이 어디 중국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중국은 각 소수민족 자치구에는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인정해주어서 각종 간판에 한글을 적어놓을수 있게 하였다.
도로표지 에도 당당히 한글로 표기가 되어있다.
연길의 명물 백산호텔은 아직도 그위용이 당당하다.
예전에 연변은 굉장히 추운곳이라고 기억을 하였는데 이때가 1월중순이었는데도 춥지가 않었다.
자 이제 연길에서 이박을 하고 내일은 백두산으로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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